지방자치를 선도하는 수원시가 올해 주민자치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실전 경험을 쌓았다. 단순히 오늘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중·장기 발전 계획까지 시민이 주도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시도했기 때문이다. 수원시민과 수원시,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우리 동네의 청사진,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지역자원과 주민참여로 “서둔동을 다시 새롭게”
수원역 일대는 철길을 기준으로 동서가 판이하다. 수원역 동편은 하루 유동인구가 수십만명에 달하는 경기남부 최대 번화가로 북적거리는 반면 서쪽은 유서 깊은 논과 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농 복합지역이다. 5.4㎢의 면적에 1만8천세대 3만8천여명이 거주하는 서둔동이 바로 그 동네다.
조선시대부터 농업연구의 중심지였던 서둔동은 생산녹지가 많고 문화재보호구역과 비행안전구역 등으로 개발이 더딘 곳이다. 하지만 서호천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 도시 가운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매력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 많고, 독거노인 비율이 많은 특징이 있다.
서둔동은 수원시에서도 주민자치 활동이 우수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19년부터 주민자치회를 시작, 7년째 마을총회와 마을자치계획을 수립하며 주민자치를 발전시켜 왔다.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서호천 주차 공간과 버스킹 무대를 설치하고, 서둔 마을 축제와 단체 체육대회를 개최해 단합하는 기회도 만들었다.
특히 올해는 기존 단기 마을 자치 사업을 넘어 3~5년 뒤를 바라보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데 집중했다. 60년 가까이 서둔동에 살고 있는 토박이부터 서둔동의 자연환경이 좋아 이사를 온 주민, 서둔동에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주민 자치 활동에 적극적인 주민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서둔동의 주거, 상업, 문화·커뮤니티, 녹지·수변 등 생활권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과 발전 방안을 찾아 ‘도시와 농업의 중심, 서둔동을 다시 새롭게’라는 비전을 완성했다.
서둔동은 찾아가는 분리배출 교육, 배변봉투함 설치, 야간 안심 가로등 설치 등 단기사업에 더해 마을 활성화를 위한 장기 사업을 구체화했다. 서호천 버스킹 무대를 보강해 주민 참여형 문화콘텐츠를 운영하고, 정기적 플리마켓을 운영해 소상공인과 주민이 상생하고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정했다. 또 주민을 통합하는 주민텃밭과 소규모 쉼터를 조성하고, 오르막길이 많은 특성을 반영해 겨울철 안전을 위한 열선 도입도 장기 사업으로 선정했다.
최영록 서둔동 주민자치회장(58)은 “이번에 장기적인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완성돼 단기에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은 장기 계획에 담겨져 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향후 새로운 주민자치회가 구성되더라도 우리동네 자치계획을 기반으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44개 동별 특색 담은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한 것은 서둔동만이 아니다. 올해 수원시 44개 행정동이 모두 동별 중·장기 발전 구상을 담은 자치계획을 수립했다. 수원시 모든 동이 중·장기 사업 계획을 수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시는 주민자치 활성화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단계적 실행계획으로 주민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고자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 수립을 추진했다.
앞서 지난 2023년 수원시에서 주민자치회가 전면 시행되면서 44개 동은 모두 주민 중심의 주민자치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풀뿌리 주민자치가 정착됐다. 하지만 주민자치 활성화 사업은 계획을 수립한 이듬해 시행하는 것이 기본 틀이어서 동 단위·소규모·단년도 사업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동별 특수성을 고려한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면서 주민과 함께 성장하는 수원형 자치계획을 모색한 것이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이다.
우리동네 자치계획은 각 동별 자치계획단이 주체가 됐다. 지난 3월부터 주민자치회와 주민 단체, 경로당, 상인회, 입주자 대표회, 일반시민까지 수원시민 1천456명이 참여했다. 행정기관과 협업기관, 전문가 튜터 등의 수립지원단을 더해 총 1천592명이 각 동의 비전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자치계획단은 먼저 교통, 인구, 위치 등 동의 현황을 분석하고 장단점과 현안 및 문제점을 파악해 마을의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찾았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 설문조사도 직접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은 동네에 꼭 필요한 비전을 찾으며 자치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 4월 각 구별로 진행된 1차 모임에서 동별로 단기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한데 이어 5월 중 2차로 온·오프라인 모임과 자체회의 등을 개별적으로 진행했다. 또 지난 6월 말에는 3차 워크숍을 열어 중·장기 전략사업을 발굴하고 마을 발전 구상도를 심도 깊게 논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원시 44개 동은 비전과 목표, 추진 전략과 과제 등을 구조화했다. 또 단기사업과 중·장기사업, 기반 시설이 필요한 하드웨어 사업과 소프트웨어 사업 등을 구분해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마을 지도와 현황, 비전과 목표, 세부 사업 내용을 한 장에 담아낸 44개 동의 마스터플랜은 오는 17일 수원시 주민자치박람회가 열리는 수원컨벤션센터에 전시된다.
◇민-관-학 협력으로 중·장기 발전계획 완성도 UP!
수원시 44개 동에서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마스터플랜은 민-관-학의 끈끈한 협력으로 완성된 결정체다.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와 의견 개진에 더해 수원시 협업 기관과 전국에서 모여든 학계 및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함께 완성도를 높였다. 단기 과제 해결을 넘어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한 비결로는 도시 관련 전문가들을 튜터로 배치한 것이 주효했다.
수원시는 우리동네 자치계획을 수립하는 44개 전체 동에 튜터를 연결, 시민이 원하는 마을 발전 방안을 스스로 제안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튜터진으로는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117명이 참여했다. 성균관대·연세대·단국대·아주대·한국교통대에서 건축학과·도시공학과·조경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 19명이 책임교수로, 전문가와 대학(원)생 등 99명이 마을조교로 수원의 각 동을 연구하고 발전 방향을 다듬었다.
우리동네 자치계획 수립에 참여한 한 주민은 “외부인인 튜터들이 마을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중구난방으로 펼쳐지는 주민 의견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줘 큰 도움이 됐다”며 “학생 조교들과 수시로 연락하고 소통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남다른 유대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수원시정연구원과 수원도시재단도 수립지원단으로 참여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동네 자치계획 수립 매뉴얼을 만들어 각 동별 워크숍 운영을 총괄 지원하고, 튜터 및 조교들을 연결했다. 또 각 동 참여 주민의 활동을 돕고, 모니터링하며 자치계획 수립 과정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특히 이재준 수원시장은 우리동네 자치계획의 전문성을 높이는 과정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지난 7월 튜터진과의 간담회를 주재하며 우리동네 자치계획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발전 방향과 활용 방안에 대한 의견을 직접 들었다. 수원시는 이를 바탕으로 수원형 자치계획의 모델을 만들어 마을자치계획의 확산을 주도한다는 구상이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수원시와 모든 마을의 발전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주말과 온라인 모임까지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자치계획단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만든 소중한 ‘미래 지도’를 주민과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