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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1 운동 최초 발생지 놓고 혼선…"재정립 필요"

수피아여고·큰장터·작은장터 놓고 증언·기록 엇갈려

[삼일절 맞이 태극기 퍼포먼스]

 

광주 3·1 만세운동이 처음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가 어디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며 역사적 학술적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구 양동시장의 시초가 된 광주천변 큰 장터나 작은 장터에서 시작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수피아여학교가 사전에 거사를 준비했다는 주장도 있다.

 

28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광주 남구 수피아여중에서 개최한다며 수피아여학교가 광주 3·1 운동의 발원지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수피아여고 발원설은 가장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 지역 역사학계의 시각이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당시 수피아여학교가 독립선언서 등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시위에 앞장섰지만, 당일 오전에서야 거사일을 전달받는 등 발원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다는 광주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의 공적조서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등에 기록된 광주천 주변 장터(큰 장터·작은 장터)를 발원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광주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김복현·김강·서정희 선생은 큰 장이 열리는 3월 8일을 거사일로 정했다가 선언문 인쇄 등이 늦어지자 작은 장이 열리는 3월 10일로 계획을 변경했다.

 

거사일이 되자 작은 장이 열린 부동교(현 금교) 아래에 1천여명이 넘는 만세 시위대가 모였다.

거사에 동참하기로 한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 교사와 학생들, 주변 농민들이 작은 장터로 모여들었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까지 합세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거나 태극기를 흔들며 서문통(광주천 인근)과 충장로우체국을 거쳐 북문(충장로4가) 밖까지 나갔다가 농업학교 학생들과 합세해 다시 충장로로 돌아오다 일경에 진압됐다.

 

이 때문에 광주 3·1 운동을 설명한 각종 자료에는 부동교 아래(작은 장터)에서 광주 3·1 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광주 3·1운동 시위 가담자들을 처벌한 1919년 일제시대 판결문을 근거로 발원지를 작은장터가 아닌 광주교 아래 큰 장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거사를 계획한 김복현·김강·서정희 등이 광주교 아래(큰 장터)에서 군중 수백명과 함께 먼저 독립운동 개시를 선언한 것으로 기록된 만큼 최초 시작지는 큰 장터라는 견해다.

 

실제 김복현 선생에 대한 판결문에는 "피고 서정희는 미리 만들어놓은 구한국 작은 국기를 가마니에 넣어 광주교 아래 하원(河源)에 반출하고…(중략)…다수의 조선인이 하원에 모이자 피고 김복현은 김강, 서정희 등과 하원으로 가서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수차례 조선의 독립만세를 부르짖고 이에 독립운동 개시를 선언하고, 각자 한국 기를 휘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는 군중과 함께 작은 시장에 이르고…(후략)"라고 적시돼 있다.

 

노 소장은 "광주 3·1 운동은 광주·전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었다"며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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