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선한용 교수]
1980년 5월, 한 신학자이며 철학자가 미국 시카고에서 광주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시카고 영사관 앞에서 분노와 슬픔을 안고 시위에 나섰고, 방송 인터뷰를 통해 군부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그 이름, 선한용 교수. 그는 광주의 정의를 세계에 증언한 신학자이자, 시대의 고통 앞에 선 철학자였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 덕림리에서 태어난 선한용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에모리대, 아퀴나스신학대학에서 수학했다.
「성 어거스틴의 사상에 있어서 시간성의 문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시간과 영원’, ‘성 어거스틴 고백록’ 등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인간 실존의 고뇌와 신앙의 깊이를 성찰 했으며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신학자였다.
하지만 그의 신학과 철학은 결코 학문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 앞에서 그는 행동하는 신학자가 되었다. 시카고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군부의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여생을 바치겠다”는 다짐과 함께, 곧장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한 선 교수는 두 달간 시민들과 고통을 나누며, 그들의 아픔과 희망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그는 감시와 긴장 속에서 학생들에게 정의와 영성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헌신했다.
“나는 매일 한국 학생들의 마음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린다는 뜻을 품고 강의에 임했다.”
그의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선 교수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정의와 연대, 그리고 신앙의 깊이를 심어주었다. 광주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호남신학대학원에서 6년간 성 어거스틴 사상을 강의하며 광주 청년들과 교감했다. 그의 진심은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았고, 그가 뿌린 씨앗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故 선한용 교수 묘지]
신학, 철학, 민주화의 길을 이어온 선한용 교수의 삶은 신학과 철학, 그리고 민주화의 길이 어떻게 하나의 사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시대의 고통에 응답한 신학자였고, 광주의 정의를 세계에 알린 증인이었으며, 학생들에게 영적 연대와 정의의 가치를 심은 스승이었다.
오늘, 그의 1주기를 맞아 우리는 묻는다.
“정의와 신앙의 길, 그 숭고한 여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선한용 교수의 삶이 그 답을 속삭인다. 고통받는 이웃 곁에서, 정의를 향해 침묵하지 않는 용기에서, 그리고 매일 마음의 밭에 씨앗을 뿌리는 작은 헌신에서. 그가 뿌린 씨앗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자라, 광주를 품은 정의와 신앙의 나무로 우뚝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