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3 (수)

  • 구름많음동두천 -7.3℃
  • 맑음강릉 -1.6℃
  • 구름조금서울 -5.7℃
  • 맑음대전 -2.5℃
  • 맑음대구 -1.5℃
  • 맑음울산 -0.4℃
  • 맑음광주 0.9℃
  • 맑음부산 1.8℃
  • 맑음고창 -0.8℃
  • 제주 7.8℃
  • 맑음강화 -6.4℃
  • 맑음보은 -4.0℃
  • 맑음금산 -2.7℃
  • 맑음강진군 1.8℃
  • 맑음경주시 -1.2℃
  • 맑음거제 1.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주요기사



[특별기고] 강수훈 광주시의원,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서 빛난 '광주'

[강수훈 광주시의원(양동•양3동•농성1,2동•화정1,2동)]

 

한때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던 윤석열은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만에 해제하고, 대국민사과를 하더니 지난 12일에는 다시 돌변해서 고도의 통치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이후 윤석열의 불법계엄 11일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 과정에서 인상깊었던 광주의 장면 몇 가지를 기록하고 싶다.

 

- 집행부·의회의 단호한 대응

 

12월 3일 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TV 속보를 보고, 잠깐 생각했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짧고 깊은 고민 끝에 곧바로 광주시의회로 향했다. 광주시의원 단체 대화방에도 지금 당장 의회에서 모여야 한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의회에 가보니 예산 심의 기간이라서 의회에 남아 자료를 보다가 계엄 소식을 들은 의원도 있었고, 귀가했거나 다른 곳에 있다가 급히 되돌아온 의원도 있었다. 수술 이후 병가 중이었던 의장도 병원에서 나와 의회로 달려왔다. 계엄 선포 이후 1시간 정도 흘렀을까. 대부분의 광주시의원들이 의회로 모두 모였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함께 있으니 계엄군이 당장 의회에 쳐들어와도 맨손으로 맞서 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한참 회의가 진행될 무렵, 시 집행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광주시장을 비롯해 5개 구청장, 종교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 대학교 총장을 중심으로 광주시청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갖겠다는 내용이었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회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반헌법적 폭거로 규정하고 즉각 해제할 것’, ‘군경은 국민의 편에서 시민들을 보호할 것’, ‘공직자들은 시민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 등 세 가지 요구안을 결의했고, 회의명을 ‘헌법수호 비상계엄 무효 선언 연석회의’로 규정했다. 민주화운동 경험을 가진 광주시장과 5·18의 기억을 가진 원로 지도자들의 용기와 지혜가 있었기에 전국 지방정부 중에서 가장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가능했다.

 

- 위기 속 빛 발한 광주정신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간단히 저녁을 먹으려고 금남로 주변에 위치한 김밥 가게를 들렀는데, 가게 주인이 ‘공짜 김밥’을 주겠다고 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집회 참가자들에게 그냥 제공하라면서 김밥 100인분을 선결제하고 갔다는 것이다. 내가 갔던 식당 한곳만이 아니라, 인근 식당과 카페에서도 선결제에 따른 무료 나눔하는 여러 곳을 목격할 수 있었다.

 

11일에는 1980년 5월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이라고 밝힌 30대 여성 그리다(활동명)씨가 멀리 프랑스에서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가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사연도 알려졌다. 유시민 작가가 과거 책을 통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맞이했을 때 나중에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무형의 ‘후불제 민주주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번 집회에서는 함께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간 시민들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갑을 열겠다는 ‘선결제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 아동청소년의회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후원금으로 마련한 기금으로 핫팩 1,000여 개를 준비했고, 추워서 손을 비비며 호호 불던 시민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5·18 주먹밥 정신의 2024년 버전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로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고 말했고, 세계는 다시 한번 광주를 주목했다. 14일 국회에서 진행된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 과정에서는 한강 작가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가 인용됐고,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다’며 여당을 향해 찬성 표결을 호소했다.

 

금남로 한복판에서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는 우원식 의장의 탄핵소추안 가결 멘트를 들으며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광주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광주의 여러 장면과 행동들은 1980년 5월 이후 44년만에 광주정신의 자부심을 계승·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래, 이번에도 광주가 이겼고, 민주주의가 이겼다!

배너
배너

최신기사

더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