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60주년 맞은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이제 가수 생활을 한 6년 한 것 같은데, 벌써 60년이 됐네요. 세월이 그리 갈 줄 몰랐습니다. 하하."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80)은 올해 뜻깊은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이래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1960∼70년대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는 톱스타로 군림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신곡을 내며 팬들과 만났다.
그야말로 '영원한 오빠'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그는 지난 15일 전북 전주 삼성문화회관을 시작으로 광명, 광주, 제주, 세종 등을 도는 60주년 전국 투어에 돌입했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콘서트 연습에 한창인 남진을 만났다.
그는 "팬들도 어린 시절이 그리울 텐데, 나를 '오빠'라고 부르면서 그분들도 젊어지는 기분이 들 것"이라며 "그 덕분에 나도 '오빠'로 존재할 수 있다. '오빠' 함성을 들으면 20대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고 연륜이 묻어나는 소회를 밝혔다.
남진은 우연한 계기로 가수가 됐다. 대학 진학 후 서울 우이동의 한 클럽에 놀러 갔다가 팝송을 불렀는데, 이를 들은 클럽의 밴드 마스터가 '노래 한번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며 작곡가 한동훈에게 연결해줬다. 그는 한동훈의 문하생으로 노래를 배워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했다.
남진이 내놓은 트로트 히트곡이 많다 보니 으레 그를 전통가요 가수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지만, 그가 애초에 관심을 둔 장르는 팝이었다. 당장 데뷔곡 '서울 플레이보이'도 세련된 팝 사운드의 노래다.
남진은 "가수가 되려면 가요를 잘 불러야 했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가요는 잘 몰랐다"며 "당시에는 미8군을 중심으로 한 팝송이 크게 유행했다. 나도 학창 시절 교탁에 올라가 팝송을 부르곤 했다"고 회고했다.
[데뷔 60주년 맞은 '영원한 오빠' 가수 남진]
그는 "나는 트로트에 한정된 가수가 아니다"라며 "내 음악의 근간은 팝이다. 로큰롤이나 칸초네 스타일의 노래도 많이 불렀다"고 했다.
그러나 남진의 첫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1966년작 '울려고 내가 왔나'는 그의 취향과는 다른 트로트였다. 원래 밀던 룸바 장르 '연애 0번지'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를 당하자 급하게 활동한 곡인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팝 장르인 '서울 플레이보이'는 전혀 히트하지 못했어요. 그다음에 당시 무명 작곡가 김영광 씨를 만나 트로트 곡 '울려고 내가 왔나'를 받았는데, 연습하다 관뒀어요. 노래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남진은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내 허탈한 표정을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묻길래 (방송 금지) 사정을 말했더니, 음반을 들어보시고 '울려고 내가 왔나'를 해 보라고 하셨다"며 "그래서 이 곡을 대신 틀어 달라고 방송국에 부탁했는데 반응이 터졌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노래가 그렇게 성공할지 몰랐다. 지금의 남진을 만든 것은 이 곡"이라며 "역시 누구도 자기 운명은 모르는 법"이라고 웃었다.
남진은 이후 작곡가 박춘석과 콤비를 이뤄 '가슴 아프게', '너와 나', '우수', '빈잔' 등 1960~80년대 대표 히트곡을 줄줄이 쏟아냈다. 그는 2010년 박춘석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위원장과 기념사업회장도 맡았다.
남진은 "원래 한 곡이 히트하면 그다음 곡을 성공시키기는 더 어렵다"며 "나는 그 시절 박춘석 선생을 만나 빠른 노래, 느린 노래,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었다.
그중 트로트 곡 '가슴 아프게'가 '울려고 내가 왔나'보다 더 히트했다. 남진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을 꼽는다면 박춘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