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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도굴'로만 기억되는 오페르트…"K-음악 주목한 첫 서양인"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 1880년 여행기 속 한국 음악평 발굴·분석 "타고르 '한국 예찬'보다 49년 앞서…음악 교류 측면 재평가 필요"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

 

"덕산의 묘지에 서양 놈들이 침입해 사초를 훼손한 변고가 있기까지 했다고 하니 아주 놀랍고 황송한 일이다." (고종실록 1868년 기록)

 

1868년 5월 독일 출신의 상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1832∼1903) 일행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다.

 

두 차례에 걸쳐 조선에 통상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하자 감행한 일이었다.

 

비록 도굴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직 개항하지 않은 나라에 들어가 왕족의 묘를 파헤친 건 심각한 일이었다. 그를 '범죄자' 혹은 '패륜적 인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간의 부정적 평가와 달리 오페르트를 문화교류사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 학계에 따르면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문화산업예술학과)는 최근 학술지 '글로벌문화콘텐츠'에 실린 논문에서 오페르트가 '한국 음악 평론가'로서의 선구적 면모를 보였다고 밝혔다.

 

[독일 출신 상인 오페르트(1832~1903)](사진:논문캡처.)

 

김 교수는 오페르트가 귀국 후인 1880년 발간한 여행기 '금단의 나라 조선'(원제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에서 한국 음악을 거론한 22개 문장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여행기에는 오페르트가 1866년 해미현 서면 조금진(현재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에 도착했을 당시 현감(縣監·현의 수령) 일행이 연 연회에서 '음악 재생장치'를 선보인 내용 등이 담겨있다.

 

김 교수는 이 장치가 곡을 미리 녹음해 재생하는 방식의 오르골이었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페르트는 조선에서 어떤 악기가 쓰였는지 소개하고 가창 특성, 자신이 선물로 가져온 서양의 뮤지컬 박스(음악 재생 장치) 시연과 그에 대한 반응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오페르트는 '한국인의 음악 애호심은 아시아의 어떤 민족보다도 강렬하다', '한국인은 서양 음악의 감상법을 알고 있으며, 음악을 매우 즐겁게 듣는다' 등의 내용도 여행기에 실었다.

 

김 교수는 "전문가 3명과 함께 분석한 결과 오페르트의 글은 현대음악 평론의 수준과 체계성에 이르진 못했지만, 형식과 내용적 측면에서 음악 평론적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다만, 서양 음악과 서양인을 우월하게 여기는 듯한 태도는 아쉬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오페르트는 징을 '시끄러운 소리', 피리는 '찍찍대는 음색'으로 표현했고, 한국인의 음악적 지식이 중국, 일본 등 이웃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나 '초보적'이라 낮잡아 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오페르트가 남긴 '음악 평론'이 갖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항기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한 '한국음악 평론 기록'을 남긴 최초의 서양인이자 한국인의 뛰어난 음악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인의 음악성과 음악 사랑에 대해 예찬한 내용은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1929년 '동방의 등불'에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설파한 시점보다 49년 앞선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존 시각과 달리 음악사와 음악 평론 차원에서는 오페르트를 재평가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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